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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리아(Armeria) - 1 -

작성일 2023.11.28 조회수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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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검연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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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리아(Armeria) - 1 -

두루두루 안녕하십니까. 아바오아쿠=킬리군입니다.
한때 글쓰기 스승이기도 한 친구와 같이 공동으로 짰던 만화의 콘티입니다. 나름대로 뼈대 있는 소재로 하려 했는데, 완벽주의자였던 친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중간에 손을 놓았던 것입니다.
비록 만화로 하진 못했지만, 글이나마 완성해보려 합니다.(18금적인 요소가 들어간 걸 보면 제 친구는 절교선언할지도 모르겠네요.. -_-;)
시간때우기 용으로 읽어주시면 좋겠군요.
반응을 보고 업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동할 때 만큼, 기쁘고 철저하고 용감하게 악을 행하는 일이 없다.- 파스칼, [팡셰] 중.

아르메리아(Armeria) - 1 -


소년은 걷고 있었다.
아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 모습은 차라리 두 발로 기고 있다고 해야 어울릴 것이다. 약간 비싸보이는 가죽제 구두에는 짓밟힌 잡초들의 즙이 여기저기 퍼렇게 묻어있었고, 튿어진 듀블레와 셔츠는 험한 숲을 계속해 달려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그의 얼굴엔 땀과 피가 흥건하다. 약간 붉은색이 섞인 가는 갈색 머리카락은 이미 헝클어져, 전에는 단정했었을 싶은 이마 위를 아무렇게나 가리고 있었다.
소년은 근처의 나무에 두 팔을 올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들썩거리던 어깨가 조금 진정되었을 무렵, 소년은 얼굴을 들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험한 숲 속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그냥 평탄한 길이라면 좋으련만,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가시넝쿨 숲이 소년을 더욱 절망으로 밀어넣었다.
나무에 기대고 있던 팔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풀썩, 소리를 내며 소년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마녀가 있다면… 차라리 날 잡아가지 그래… 빌어먹을.."
교회의 부패, 성직자의 타락.
이러한 교회에 맞서 '알비파'라는 조직에 의한 이단운동이 일어나고, 교황 인노켄티우스3세는 여기에 대항하여 알비 십자군을 편성한다. 이 십자군은 1229년에 해산하고 말았지만, 여기서 '이단심문'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태어나게 된다. 이단 적발시, 이단자의 모든 재산은 교회 소유가 되기에 서로 이단자를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고, 모함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며, 마침내는 '마녀'란 존재까지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초기엔 미미했던 '마녀'라는 개념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으며, 마침내 15세기 말, 마녀의 색출을 명시한 이노센트8세의 '금인 칙서'가 반포되기에 이르른다….
어떤 역사 평론가는 말한다.
나치즘에 희생된 사람들보다, 흑사병에 죽은 사람들보다, 마녀사냥의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리카스테를 놓쳤어?"
적포도주가 든 와인글라스를 한 손에 든, 긴 갈색 머리의 여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색 드레스 아래로 드러나는 볼륨 있는 풍만한 몸매와, 드러난 하이얀 어깨가 묘한 색기를 풍긴다. 가느다란 목 위의 조그마한 얼굴엔 배치 좋게 이목구비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왠지 두터운 눈썹 아래의 눈은 냉혹한 느낌을 주는, 그런 얼어붙은 듯한 아름다움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곧 수색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바보, 바보들이군요. 여럿이서 그 소년 하나를 못 잡아."
"면목 없습니다…."
"…빨리 찾도록 하세요."
"네, 시클레멘 아가씨…."
시클레멘이라 불린 그 여인은 다시금 와인잔에 붉은 입술을 가져가며,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리카스테… 후훗… 반드시 내 걸로 만들어 버리겠어…."
그녀는 미소지었다.
궁지에 몰린 쥐를, 덮치기 전에 멀찍이서 바라보는 고양이와 같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닥쳐라, 요망한 것, 네가 저번 금요일 밤, 교외에서 사바스(sabbat-마녀의 집회)에 참석했다는 말이 있다.'
'무슨 말씀을!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이 년을 묶어라!'
'어머니!'
'리카스테, 도망쳐!'
'저 녀석도 잡아라!'
'안돼!'
샤아악!
'어, 어머니!'
"어, 어머니이이이이이―!"
소년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헉… 헉…."
잠시 얼굴에 양 손을 갖다대어 문지르는 소년. 그 끔찍한 영상은 비록 꿈이었지만, 피와 같이 선명한 기억을 되살려 내었다. 바로 그 날의 기억을.
"빌어먹을… 제길…."
내가 강했더라면, 내가 강했으면…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소년은 고개를 떨군다. 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 여기는 어디야?'
분명, 자신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쓰러진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는데….
지금 자신의 위에 덮여져 있는 것은 흰 이불, 아래에는 깔끔한 목조 침대.
낯설지만, 왠지 아늑함이 풍겨지는 곳이었다.
덜컹…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의 눈이 소리가 나던 곳으로 돌려졌다.
"이제 일어났군."
문 뒤로 새어 들어오는 빛 때문에,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 그 그림자는 약간 퉁명스러운 어조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말을 건 것이라기 보단 불평이랄까.
"…누…"
"베리디스, 저 사람 정신 차렸어."
"그래애…? 다행이네."
처음의 그림자 다음으로, 부드러운 느낌의 목소리로 말을 하며 들어오는 실루엣은, 그 부드러운 선으로 보아 여자임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처, 천사…?'
소년은 순간 그렇게 느꼈다.
황금을 녹인 것 같은 빛나는 금발을 단정히 한 가닥으로 땋아 앞쪽으로 내린 시원한 파란 눈의 소녀가, 걱정스러움과 안도감이 섞인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새어나오는 빛은 마치, '빛의 날개' 처럼 그녀를 신비하게 둘러싸고 있었고, 더불어 그녀가 입고 있는 새하얀 옷은 그가 평소 상상하던 천사의 이미지를 그대로 느끼게 하였다.
"당신은…"
"숲 속에 쓰러져 계셨어요… 산딸기를 따러 갔다가, 발견해서, 여기 루이가 업고 온 거예요. 기억이 나실 리가 없지만."
그녀는 다정다감한 어조로, 소년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마음 속 까지 뚫어보는 듯한 그런 느낌에, 소년은 반사적으로 눈을 깔아버렸다.
"얼씨구? 벌써 베리디스한테 반한거 아냐?"
"무슨 소리야, 환자한테 할 말버릇이 아냐. 루이."
베리디스라고 불리운 소녀는, 뒤를 돌아보며 '루이'에게 면박을 주었다. 약간 시무룩한 표정이 된 그를 내버려두고, 다시금 베리디스는 소년에게로 눈을 돌렸다.
"신경 쓰지 마시고, 나으실 때 까지 누워 계세요… 에…"
그녀는 소년을 뭐라고 부를 지 몰라 잠시 난감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소년은 짧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리카스테."
"네, 리카스테씨."
그녀는 곧 이름을 알아듣고는, 리카스테를 눕히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조금 파인 드레스 너머로, 가슴의 골이 리카스테의 시야에 들어왔다.
"…!"
순간 리카스테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경직된 표정으로 계속 베리디스의 가슴 사이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적어도 루이는 그렇게 느꼈다.
"야, 이자식이! 너 지금 뭐 보는 거야! 베리디스, 떨어져!"
"루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베리디스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럼 잘 쉬세요, 리카스테 씨. 하고는 흥분한 루이를 떠밀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
십자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어…
어머니를 죽인 놈들의 옷에 새겨져 있던 그 십자가랑 똑같은…
리카스테는 약간의 패닉 속에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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