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와 여자농구 판도 주도하는 김연경·김단비의 노장 투혼 30대 중반 두 베테랑의 활약 그 이면엔 세대교체 실패의 그림자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명불허전이다. 시간은 이들에게만 흐르지 않는 것 같다. 해가 바뀌었지만 기량은 여전하다. 여자배구(V리그) 김연경(흥국생명)과 여자프로농구(WKBL) 김단비(우리은행)가 그렇다. 겨울 코트는 아직 이들의 천하다.
36세, 프로 20년 차 김연경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칠 줄 모른다. 11월26일 현재 공격성공률 1위(46.76%)에 올라있다. 국내 선수 중 김연경 다음으로 공격성공률이 높은 선수는 강소휘(한국도로공사)로 37.34%다. V리그 초반이기는 하지만 김연경의 공격성공률은 작년(44.98%)보다 오히려 더 좋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픈 공격(42.25%), 퀵오픈(53.25%)도 외국인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1위다. 득점은 5위(183점·9경기 평균 20.33점)에 수비도 잘한다. 리시브 효율이 41.89%로 전체 4위다. 수비 전문 리베로만큼 공을 잘 받아낸다. 아시아쿼터 포함, 흥국생명에 외국인 선수가 3명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활약을 앞세워 김연경은 출입기자단 투표를 통해 1라운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개인 통산 12번째 라운드 MVP(월간 MVP 3회)다. 김연경이 코트에서 훨훨 날자 흥국생명 또한 적수가 없다. 11월24일 현대건설과의 경기(3대1 승)까지 2024~25 시즌 9전 전승을 거뒀다.
김연경은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도 집계가 비공개로 전환될 때까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투표는 11월27일까지 진행됐으며, 김연경은 이변 없이 3시즌 연속 최다 득표의 영광을 안을 것으로 보인다. 실력에서도, 인기에서도 대체 불가한 선수다. 2005년 프로 데뷔 이후 줄곧 톱 위치에 있었던 그다. 국가대표에서는 은퇴했으나 2020 도쿄올림픽 4강을 이끌면서 현재의 여자배구 인기를 견인했다. 김연경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유튜브 '식빵언니 김연경'은 현재 구독자가 118만 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배구 소재 영화 《1승》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코트 안팎에서 바쁘다.
배구 코트에 김연경이 있다면, 농구 코트에는 김단비가 있다. 1990년생 프로 18년 차인 김단비는 2007년 신한은행에서 데뷔한 뒤 15년 동안 몸담으면서 팀의 5연패 등을 이끌었다. "농구를 더 잘하고 싶어서" FA계약으로 2022년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뒤에도 그는 승승장구 중이다. 2022~23 시즌, 2023~24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MVP가 됐다. 이적 첫 시즌(2022~23)에는 팀의 통합 우승을 이끌면서 숙원이던 챔피언결정전 MVP를 생애 처음 차지했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2023년 개최) 때는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는 데 도움을 줬다. 2010년 처음 국가대표가 된 김단비는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스타급 '차세대'가 없다
2024~25 시즌에도 김단비보다 잘하는 선수는 여자농구 코트에 없다. 개막 초기 국내 선수 최초로 3경기 연속 30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11월26일 현재 득점 1위(평균 23.56점)를 달리고 있다. 2점 성공(73개), 자유투 성공(36개), 평균 블록슛(1.44개), 스틸(22개), 공헌도(339.50) 부문에서도 모두 1위다. 리바운드 부문(10.44개)은 진안(10.88개·하나은행)과 1위를 다투고 있다.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평균출전시간이 37분36초(9경기 338분)로 가장 길다. 김단비보다 열한 살 어린 허예은(KB스타즈)이 평균출전시간 2위(37분20초)에 올라있다. 1라운드 MVP는 당연히 김단비의 몫이었다. 13번째 MVP다. 김단비는 11월26일 발표한 올스타 팬 투표 중간 집계에서 당당히 1위를 달리고 있다. 김연경과 상당히 비슷한 행보다.
30대 중반의 '리빙 레전드'인 두 베테랑의 활약은 후배 선수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비롯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더딘 세대교체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이들을 위협하고 대체할 만한 어린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김연경을 대체할 수 있는 국내 선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김연경 은퇴 이후 여자배구의 인기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김연경만큼은 아니더라도 스타급 차세대 선수가 커야만 한다"고 했다. 여자농구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구세대를 위협할 신세대의 활약이 아쉬운 대목이다.
김연경이나 김단비 모두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고민 중이기는 하다. 김연경의 경우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은퇴를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우승이 고파서 선수생활을 연장했다. 김연경은 2005년 프로 데뷔 뒤 4시즌 동안 3차례 우승(1차례 준우승)했지만 일본, 튀르키예, 중국 등 국외 리그를 뛴 뒤 12년 만에 국내에 복귀(2020년)한 이후에는 우승이 없다. 2020~21 시즌에는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와 함께 통합 우승을 꿈꿨으나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되면서 좌초(준우승)했다. 중국리그에서 뛰다가 2022~23 시즌 다시 돌아와 팀의 정규리그 1위를 도왔으나 챔프전에서 한국도로공사에 2승을 먼저 거두고도 세 번을 내리 패하면서 트로피를 내줬다. V리그 역사상 초유의 챔피언결정전 리버스 스윕 패배였다. 절치부심하면서 2023~24 시즌을 맞았으나 역시 준우승에 그쳤다. 매번 눈앞에서 우승을 놓쳐서 오기가 생길 만도 하다.
김단비 또한 2023~24 시즌 뒤 잠깐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성적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기록이 여타 선수들을 압도한다. 팀내 비중이 너무 커서 김단비가 부진하면 팀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 뒤 팀 구성원이 대거 바뀌어 이들을 한데 뭉치게 할 구심점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김단비는 여러 인터뷰에서 "힘들어서 내려놨을 때도 있지만 매 경기에 앞서 끝나고 후회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앞으로 할 게임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그걸 원동력으로 뛰는 것 같다"고 했다.
끝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결코 초라하지는 않다. 더불어 그들이 없는 미래가 사뭇 걱정되기도 한다. 여자배구, 여자농구 두 베테랑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박수를 보낼 차세대 스타의 부재에 아쉬움을 삼키는 두 리그다.